1945년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은 종교를 과거의 낡아빠진 유물로 간주해왔다. 김일성은 "종교는 반동적, 비과학적 개념이다. 일단 사람이 종교를 갖게 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각성은 마비되고 혁명에의 염원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종교는 아편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교를 사회주의 혁명과 조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명확히 밝혔다.
(사)행복한통일로의 대표 도희윤 씨는 북한의 종교 변화를 여섯 단계에 걸쳐 설명한다.
첫 번째 시기는 북한 체제가 세워진 1945과 1948년 사이이다. 북한의 새로운 체제는 신앙을 가진 개인을 박해하기 보다는 종교 기관의 재산과 토지를 몰수했다. 당시 북한은 력한 공산주의 구조로 완전히 변형되지 않았고 약 20만명의 신앙인들을 직접적으로 탄압할 준비가 된 상태는 아니었다.
두 번째 시기는 종교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 시기인 1949년 1953년 사이이다. 한국 전쟁을 치르는 동안 북한 체제는 반혁명적 요소는 어떠한 것이든 제거하고 동시에 그들 자신의 혁명적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종교를 가진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사찰과 교회는 파괴되었고 많은 종교인들이 처형당하거나 강제적으로 남한으로 보내졌다.
세 번째 시기는 종교적 자유의 소멸의 시기로 1954년에 시작해 1972년까지 지속되었다. 1958년에 북한 당국은 상호감시체계를 도입했고 인민들이 반체제 행위에 대해 서로를 감시하고 보고하도록 만들었다. 종교 활동은 감시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1967년에는 거주민 재등록이 있었고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은 세 계급과 51개의 분과로 분류되었다. 이 구조에 따르면 종교인들은 적대 계급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이후로 종교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감시와 박해는 계속 강화되었고 처벌은 더욱 엄격해졌다. 이 시기에 북한에서 종교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네 번째 시기는 1972년에서 1986년으로, 이 시기에는 북한 체제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 기구들을 이용했다. 재북 일본인의 송환, 경제 변화, 남북대화와 같은 많은 다른 이유를 이루기 위해 북한 체제는 국내에 남아있던 종교 기구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카톨릭협회와 같은 가짜 종교 기구들을 설립해 남한 내 종교인들과 단체와 협력을 가졌다.
다섯 번째 시기는 북한 체제가 종교 기구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1988년에서 1997년 사이이다. 이 기간 동안 봉수 교회, 칠골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는 서구 사회와의 유화를 위해 북한 내에서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시기는 1988년 이후로 북한 종교 기구들이 지하활동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시기이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교 기관들의 도움을 받고 신앙을 갖게 된다.
북한 체제는 종교의 자유를 겉으로는 허락하고 있는듯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종교 행위의 소멸을 위한 엄격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당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신앙을 갖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 지하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며 이러한 지하 종교 활동은 끊임없이 증가 추세에 있다.